마태복음 22장 34-40절로 율법과 죄에 대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 목차 -
1. 율법에서 죄의 비참함을 앎.
2. 율법의 요구.
3. 율법의 유형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 3문. 당신의 죄와 비참함을 어디에서 압니까?
(From where do you know your sins and misery)?
(From the law of God).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 4문: 여호와의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What does God's law require of us)?
답: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2장에서 이렇게 요약하여 가르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Christ teaches us this in a summary in Matthew 22: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great and first commandment. And a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ur as yourself. On these two commandments depend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 5문 :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Can you keep all this perfectly)?
답: 아닙니다. 나에게는 본성적으로 여호와와 이웃을 미워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No, I am inclined by nature to hate God and my neighbour).
1. 율법에서 죄의 비참함을 앎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어디에서부터 알게 됩니까? 여호와께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셔야만 합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떻게요?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당신의 율법을 통해서 가르치십니다. 율법을 언급할 때에, 사실상 우리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말씀에 명기해놓으신 모든 요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요구는 언약의 열 가지 말씀(십계명)과 마태복음 22:37-40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율법으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우리가 원래 할 수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바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볼 때에,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바대로 되지 않았고 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으로 우리 자신을 진단해봄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에 도무지 미치지 못하는 가공스러울 정도로 타락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가르쳐주신다고 말함으로서, 우리는 단지 율법만이 우리에게 이 지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율법을 토도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고, 또 이것을 완전하게 암기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율법을 통해서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6:8에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이전에 복음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았던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일으키신 효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을 부어주신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설교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여호와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또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죄에 대한 각성은 율법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옵니다.
2. 율법의 요구
누구든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 말은 분명히 옳습니다. 그러나 이 대답은 여호와의 요구의 깊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순종을 보이는 것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방식으로 순종할 수도 있습니다(시편 50: 이사야 29:13; 요엘 2:13; 마태복음 23장을 참조하라). 여호와께서는 외형적이거나 아니면 의식적인 순종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종을 바라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이것은 율법이 제4문답에서 요약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너는 여호와를 사랑하라…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호와를 사랑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공허한 순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순종 없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요한복음 14:15 참조). 게다가 여호와께서 완벽한 사랑, 완전한 사랑, 여호와와 이웃 다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율법의 요약이 다음과 같이 말씀할 때에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를 사랑하라.” “다하여”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마음, 목숨, 뜻이라는 표현 역시 분명하게 여호와께서 우리가 여호와께 감사하고 또 살아있는 사랑의 제사로서 우리 자신 전부를 희생할 것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불순종을 통해서 여호와로부터 떠나 유리방황하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창조 시에 순결과 신실함과 의로움과 같은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신 이 경이로운 선물들을 다 상실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 은사들 중에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또 어떤 선도 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5문답에서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바입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Can you keep all this perfectly)? 아닙니다. 나에게는 본성적으로 여호와와 이웃을 미워하는 성향이 있습니다(No, I am inclined by nature to hate God and my neighbour).”
3. 울법의 유형
율법이 오늘날 더 이상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구약 시대에 율법이 있었지만, 그러나 오늘날에는 은혜, 특히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구약에서 이 율법들을 엄격하게 지켜야만 했으나, 그러나 신약에서 우리는 단지 여호와와 이웃을 사랑해야만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폐할 수 없다(마태복음 5:17)고 하셨고 또 우리가 요한복음 14:15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우리가 다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더 이상 염소나 양을 가져다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도 강제력이 있는 율법도 있고, 더 이상 강제되지 않는 율법도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 기록된 율법에는 서로 다른 유형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분해야 합니다.
가. 구약에서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 사용된 시민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물건을 훔친 사람들에게 보상해주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또 범죄자들에게 해당되는 법도 있었습니다. 비록 이러한 율법들이 신약에 사는 우리에게 길잡이로서 사용될 수 있고 또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율법을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신정국가란 교회와 국가가 하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또한 시민정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교회와 국가는 분리됩니다.
나. 구약에서 예배와 관련된 문제들을 포함했던 의식법들이 있었습니다. 성일, 희생제사, 정결과 불결에 관한 법률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율법들은 백성들의 관심을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도록 의도되었기 때문에 신약에서 더 이상 강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래서 이 “그림자”는 폐지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의식법들을 공부하고 배웁니다. 왜냐하면 이 의식법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또 그분이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다. 구약에서 언약적인 율법도 있었습니다. 이 언약적인 율법들은 언약 생활을 위해 적용되는 율법들이었습니다. 이 율법들은 우리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서 볼 수 있는 언약의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으로 요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법은 성경에서 더욱 진척되었습니다. 이 율법들은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이 언약법은 항상 강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과 맺으신 언약이 영원하듯이, 이 언약법 역시 영원히 적용될 것입니다. 이 언약법은 우리가 항상 매일 생활을 반드시 통제해야 할 규범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계명들의 빛에서 우리의 삶을 살펴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 순종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