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9~11문에서 "죄인이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를 주제로 하고 "첫째 사람의 타락, 둘째 여호와의 공의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부제 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목차 -
1. 사람의 타락.
2. 여호와의 공의.
3.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9문. 여호와께서 사람이 행할 수 없는 것을 그의 율법에서 요구하신다면 이것은 부당한 일이 아닙니까?
(Is God, then, not unjust by requiring in His law what man cannot do??
답. 아닙니다. 여호와는 사람이 행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으나, 사람은 마귀의 꾐에 빠져 고의로 불순종하였고, 그 결과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도 여호와의 그러한 선물들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No, for God so created man that he was able to do it. But man, at the instigation of the devil, in deliberate disobedience robbed himself and all his descendants of these gifts).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10문.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불순종과 반역을 형벌하지 않고 지나치시겠습니까?
(Will God allow such disobedience and apostasy to go unpunished)?
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원죄와 자범죄 모두에 대해 심히 진노하셔서 그 죄들을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의로운 심판으로 형벌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0)고 선언하셨습니다
(Certainly not. He is terribly displeased with our original sin as well as our actual sins. Therefore He will punish them by a just judgment both now and eternally, as He has declared: Cursed be every one who does not abide by all thing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and do them (Galatians 3:10)).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제11문. 그러나 여호와는 또한 자비하신 분이 아닙니까?
(But is God not also merciful)?
답. 여호와는 참으로 자비하신 분이나 동시에 의로우신 분입니다. 죄는 여호와의 지극히 높으신 엄위를 거슬러 짓는 것이므로 여호와의 공의는 이 죄에 대해 최고의 형벌, 곧 몸과 영혼에 영원한 형벌을 내릴 것을 요구합니다
(God is indeed merciful, but He is also just. His justice requires that sin committed against the most high majesty of God also be punished with the most severe, that is, with everlasting, punishment of body and soul).
1. 사람의 타락
여호와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여호와께서 사람을 이 모든 계명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로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이 능력을 상실한 것은 순전히 사람의 과오(過誤)입니다. 사람은 결코 여호와께 비난하려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음과 같은 예화를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집을 짓기 위해서 청부업자와 계약을 맺고, 그가 필요한 자재를 사는데 드는 비용 중의 절반을 제가 먼저 그에게 지불하였습니다. 그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곧장 도박장으로 도박하여 그 돈을 다 탕진해버렸습니다. 그가 나에게 와서 “나는 당신의 집을 지을 수가 없게 되었소. 내가 당신의 손을 다 써버렸소.”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와 계약을 맺을 때에 한 그 조건을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까? 내가 그에게 셈하라고 할 권리가 없습니까? 저는 확실하게 그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우리가 죄 가운데로 타락하기 전에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공의로우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만일 (죄가 들어오기 전에 요구하셨던) 원래 요구하셨던 바를 취소하셨다면 사실상 공정치 못한 분이 되십니다. 여호와의 공의는 사람과 맺은 그의 언약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동전에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공정하셔야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정원을 단장하기 위해서 어떤 젊은 사람을 고용해서 세 시간 당 21 달러를 준다는데 합의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원을 단장하고 난 뒤에 만일 제가 21달러를 주기 전에 장미 덩굴과 꽃밭에 잡초를 제거해달라고 조른다면 공정치 못한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그 젊은이에게 공정치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 요구를 낮춘다면 내 자신에게 공정치 못한 것이 됩니다. 그 젊은이가 정원의 1/3 즉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21달러를 지불한다면, 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에게나 당신께나 이렇듯 공정치 못하신 분이 아닙니다(딤후2:13). 그러므로 언약의 요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지속됩니다.
• 여호와의 사람에게 신실하심이 친히 그 요구를 증가시키지 못하게 막는다.
• 여호와의 자신에 대한 신실하심이 친히 그 요구를 감하게 하지 못하게 막는다.
2. 여호와의 공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여호와의 이러한 완전한 순종에 응할 수 없습니다. “무능력”이라고 불리는 길은 닫혀버렸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우리의 대표자로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요구된 완전한 순종을 행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받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이 의는 여호와의 율법에 완전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은 우선 다른 길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또 사람은 “간과 혹은 봐주기(overlook)”라고 불리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신이 지은 죄들을 단순히 간과하실지 말지에 대해서 미심쩍어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이 지은 모든 죄에 대해서 잊어버리신다면, 우리의 불순종에 대해서 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때때로 부모들이 하는 것처럼 하실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못을 저질러 놓은 아이가 어머니에게 “미안해요. 엄마! 다시는 그렇게 안 할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 아이 엄마는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눈 감아주고 아이에게 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은 “엄마”인지도 모르지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잘못을 눈 감아 주실 수도 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다시 우리는 여호와의 언약에 신실하심을 직면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신실하십니다. 이 신실하심은 단지 언약적인 요구에 있어서만 아니라, 언약적인 진노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본 교리문답은 사무엘상 15:29을 말씀할 때에 이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게다가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어떤 것을 간과하도록 고무시키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백화점 출납원이 우리에게 5달러를 부풀려 받았다면, 우리는 되돌아가서 5달러를 환불할 것을 쉽게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녀가 단지 5센트만을 더 받았다면, 우리는 이정도 쯤은 눈감아 줄 수 있습니다. 논점은 우리가 이런 일들 즉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들을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일에는 그냥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덮고 지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대단히 심각합니다. 우리의 죄는 반역죄입니다! 우리의 죄는 바로 영적인 간음입니다. 우리의 죄들은 여호와를 크게 대적한 것입니다. 그분은 이 죄에 대해서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죄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본 교리문답은 “그냥 봐주기 혹은 대충 넘기기”라고 불리는 길을 차단시켰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죄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를 짊어지신 예수님께 곧 바로 가야만 합니다. 여호와의 진노는 더 이상 여호와께 접붙임을 받은 자들에 대하여 이글거리며 타오르지 않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사람은 여전히 수많은 길을 모색합니다. 사람은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을 간청합니다. 사람은 “자비(mercy)”라고 부르는 길을 모색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자비로운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달라고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신뢰할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공의로우심이 보속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여호와의 자비하심과 공의로우심) 여호와의 성품은 결코 대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가 이런 분이 되셨다가 아니면 저런 분이시기도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코 여호와는 변덕쟁이가 아니십니다. 더욱이 본 교리문답은 여호와는 공의로우시면서 동시에 자비로우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의 공의와 자비는 붙어 다닙니다. 여호와의 자비하심과 공의로우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만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요구들이 만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 이 순종과 의는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돌이킬 때에 우리의 것이 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들을 받습니다. 게다가 언약의 진노가 그리스도 안에서 보속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형벌과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채찍을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공의와 별개의 자비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 역시 확실합니다. 만일 공의가 없는 자비가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9~11문 설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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